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언적(李彦迪)의 6대손인 이시중(李遈中)의 분문가(分門家)로 1733년경에 세워진 것이나, 현주인 이희태의 조부가 매입한 것이라고 한다.
勿자형 마을의 남촌 넓은 터에 바로 앞의 산줄기를 향하여 남향한 집으로 一자형 대문간채, 마구간채, ㅁ자형 몸채, 광채 등 모두 5채로서 구성된 큰 집이다. 동남향한 대문간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서남쪽부터 광 1칸, 대문 1칸, 광 2칸을 두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전면에 남향한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광 1칸과 마구간 2칸으로 구성된 마구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아래채 · 안채와 더불어 ㅁ자형 몸채를 이루는데 아래채 측면인 남측면과 사랑채 서쪽 끝 사이에 쪽문을 달아 안마당으로 출입한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서쪽부터 대청 2칸, 사랑방 2칸, 청지기방 1칸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사랑방 아래칸과 청지기방 뒷면에서 안채의 건넌방 남쪽면과 면하여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아래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서남향 집인데 남쪽부터 마루방 1칸, 아랫방 2칸, 헛간 1칸, 광 1칸, 방 1칸, 마루방 1칸을 늘어놓았다.
ㄱ자형으로 꺾이는 곳에 안방을 두고 그 아래쪽에 부엌을 두었으며, 안방 앞에 대청과 건넌방을 둔 서울지방의 ㄱ자형 평면양식을 이루고 있다. 부엌은 2칸이고 안방은 2칸짜리 하나와 대청으로만 출입할 수 있는 윗방이 붙어 있다. 대청은 큰 간살로 2칸이 된다.
아래채와 부엌 사이의 쪽문으로 뒤뜰에 이르면 서쪽에는 광 2칸, 방앗간 1칸으로 구성된 방앗간채가 있고, 그 옆에는 광 2칸과 방 1칸으로 구성된 광채가 있다. 대문간채의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삼량집이다.
사랑채도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대청 정면 중앙에만 두리기둥을 세웠다. 가구(架構)는 삼량으로 납도리에 장여가 받으나 소로받침은 없고 홑처마의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 또한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워 납도리로 결구한 삼량집으로 홑처마를 이루고 있으며 건넌방 툇마루에는 간결한 평난간을 달았다.
아래채 · 마구간채 · 광채 등은 모두 납도리집 삼량가구로서 홑처마의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동쪽 높은 동산 쪽에 과실수를 심어 지세를 잘 이용한 점과 서쪽에 마구간채를 두어 낮은 면을 보완한 점 등은 특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