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기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호조좌랑, 원주수령, 부평수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응우(應遇)
  • 죽재(竹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586년(선조 1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좌랑|원주수령|부평수령
  • 출생 연도1531년(중종 2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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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좌랑, 원주수령, 부평수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우(應遇), 호는 죽재(竹齋). 양치(楊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제달(楊悌達)이고, 아버지는 돈녕주부(敦寧主簿) 양희수(楊希洙)이다. 어머니는 송환정(宋環貞)의 딸이다. 양사언(楊士彦)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2년(명종 7)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호조좌랑을 거쳐 원주·부평 등 7읍(邑)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청백(淸白)하여 칭송을 받았다.

선조가 등극한 뒤 소를 올려, 외적의 침범에 대한 방어대책을 진언했는데 과연 뒷날 그 예언이 맞아들었다. 1586년 병으로 앓아눕게 되자 스스로 죽을 날을 점쳤는데, 틀림없이 그 날에 나이 56세로 죽었다.

시에도 뛰어났으며, 형 양사준(楊士俊)·양사언 등 세 형제가 모두 대과에 급제하고 문필에 뛰어나 세상에 평판이 높았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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