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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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인물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제11-마호 「임실필봉농악」의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이칭
필봉(筆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1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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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제11-마호 「임실필봉농악」의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내용

호는 필봉(筆峯). 국가무형유산 제11-마호 임실필봉농악 기예능 보유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 출신. 보유종목은 상쇠이다. 본업은 농업. 언변이 좋고 기억력이 비상하여 꽹과리를 잡으면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상당히 강하다.

임실필봉농악이란 호칭은 “붓끝같이 생긴 마을이 있다”하여 일제시대 즈음부터 호칭된 ‘필봉마을’에서 유래하였으며, 뜬쇠가 아닌 한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순수 마을 농악이라는 점이 다른 농악대와 다른 점이다. 1980년대 대학의 풍물놀이 동아리의 풍물 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수제자로 김현숙, 김동원, 이동진, 박형태 등이 있다.

김현숙은 1970년 후반 한때 양순용과 함께 부쇠를 잡고 공연하기도 했으며, 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동원은 양순용을 만나 필봉농악을 배우면서 농악에 매료되 포항공대를 중퇴하고, 필봉 농악의 전수의 길로 들어섰으며, 박형태는 장구가 특기이며, 필봉에서 전수관을 지키고 있다.

양순용의 기예는 그의 아들 양진성과 양진환에게 이어지고 있다. 1979년 국기원(서울 종로)에서의 공연을 비롯 여러 차례 서울 공연을 했으며, 양순용이 작고한 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임실필봉농악 공연에서는 양진성이 상쇠를 잡아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근사한 공연을 펼쳐,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일이 있다. 장남과 차남은 남원민속국악원에서 부친의 맥을 잇고 있다.

참고문헌

『호남좌도 농악에 관한 연구』(김현숙, 서울대석사학위논문,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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