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심원(深源), 호는 만수(漫叟). 양성지(梁誠之)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사경(梁思敬)이고, 아버지는 군수 양근(梁謹)이다. 어머니는 좌찬성 어계선(魚季瑄)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가 되고, 1606년 증광문과에서 장원하였다. 같은 해 전적(典籍)과 호조·예조의 좌랑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갈 때, 사신 이홍로(李弘老)가 병을 핑계삼아 모면하려고 하자, 장계(狀啓)를 올려 이홍로의 병세를 알렸다는 이유로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명나라를 다녀온 뒤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1617년(광해군 9) 희천군수 재임시 선치(善治)함으로써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분승지(分承旨)가 되었다가 서북변경이 심상하지 않자, 평산현감으로 나아가 고을을 잘 다스려 가자된 바 있으며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사람됨이 깨끗하고 신중하여 관직생활에서는 청렴하고 집에서는 선행을 행하였다. 문장에 능하였고 글씨도 잘 썼다. 수령 재임시에는 순리(循吏: 법을 잘 지키며 근면한 관리)로서 칭송을 받았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