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서울 양천 고성지는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 6세기 중반 이후에 쌓은 둘레 380m 가량의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산성은 한강변에 접한 얕은 구릉인 궁산(해발 74.3m) 정상부를 둘러싸고 축조되었는데, 일제강점기와 근대에 군 기지로 사용되면서 유적이 많이 훼손되었다. 당초 삼국시대의 성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발굴 조사 결과 성벽의 축조 기법이나 성벽을 조성할 당시의 토층에서 수습된 목탄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 그리고 출토 토기 및 기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신라가 쌓은 성이 분명하다.
정의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 6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
발굴 경위 및 결과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성에서 출토되는 기와는 주로 격자문과 선문 계통이며, 토기 중에는 8세기 대로 편년되는 인화문 토기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성벽의 몸체 부분 내부 뒷채움토에서 수습한 목탄을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한 결과 대체로 6세기 중엽에서 8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다양한 연대값이 도출되었다.
이상의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양천 고성은 신라가 553년 한강 유역을 장악한 이후 어느 시점에 들어 서해에서 한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수상 교통로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서울 양천고성지』(한얼문화유산연구원, 2016)
- 『서울 양천고성지Ⅱ』(한얼문화유산연구원, 2019)
논문
- 장정수, 「양천고성의 변천과정 연구」(대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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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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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쏘기 위하여 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돌출부. 성벽을 앞이나 옆에서 보호하는 구조물로서, 그 위에 성가퀴를 쌓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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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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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줄로 이루어진 무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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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도자기를 만들 때에, 도장 따위의 도구로 눌러 찍은 무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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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의 기본적인 것에 일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지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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