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고양 행주산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난 곳이다. 권율 장군을 비롯한 의병과 승병 2천 3백여 명이 왜군 3만여 명과 맞서 싸워 승리를 이끌었던 역사적 현장으로, 당시 전투에서 아낙네들이 긴치마(행주치마)를 이용해 돌을 옮겨 싸움을 거들었다는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7~8세기에 축조된 토성으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발굴 조사에서는 7세기 전중반에 석축 성벽이 축조된 이후 12~13세기경 토성이 축조되었고, 다시 고려 말, 조선 초에 석축 성벽이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정의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 축조된 토성과 석성이 있는 산성.
발굴 경위 및 결과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고양 행주산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테뫼식 석축 산성에 토성이 부가된 형태로 다소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는데, 아직까지 산성 전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토성 구간에 대한 전체 양상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와 자기, 기와와 철기 등이 있다. 토기는 대체로 7세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뚜껑과 완(盌), 대부완(臺附盌), 호, 벼루 등이 확인되었다. 기와는 격자문과 선조문이 타날된 평기와와 쌍조문이 있는 막새도 확인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
- 『大東地志(대동지지)』
- 『宣祖實錄(선조실록)』
- 『仁祖實錄(인조실록)』
단행본
- 『행주산성 시굴조사보고서』(서울대학교 박물관, 1991)
- 『고양 행주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시굴조사』(불교문화재연구소, 2019)
- 『고양 행주산성』(한양문화재연구원, 202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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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성곽의 축조지형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한 바퀴 둘러 쌓은 것. 역사용어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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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집이나 다리, 방죽 따위의 헐어진 곳을 고쳐 짓거나 보수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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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집이나 축조물 따위가 허물어지거나 낡아서 새로 짓거나 고쳐 쌓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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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사슴의 머리에 난 뿔. 나뭇가지처럼 생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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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말뚝 따위를 죽 잇따라 박아 만든 울타리. 또는 잇따라 박은 말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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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처마 끝에 놓는 수막새와 암막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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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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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굽 달린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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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사슴의 머리에 난 뿔. 나뭇가지처럼 생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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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말뚝 따위를 죽 잇따라 박아 만든 울타리. 또는 잇따라 박은 말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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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어떤 지역 내에 있는 유물의 유무, 분포, 성격 따위를 파악하기 위해 땅 위에 드러난 유적ㆍ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조사ㆍ기록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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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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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판자와 판자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다지는 일. 또는 그 판자와 공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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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문살을 바둑판처럼 가로세로가 일정한 간격으로 직각이 되게 짠 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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