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엄체수(淹遞水)’로,「광개토왕릉비문(廣開土王陵碑文)」에는 ‘엄리대수(奄利大水)’, 『양서(梁書)』 고려전에는 ‘엄체수(淹滯水)’라 하였다.
주몽신화에 의하면, 부여에서 피신한 주몽이 엄체수에 이르렀을 때, 부여의 군사가 뒤를 추격해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주몽이 강물에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라”고 외치니 물속에서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몽 등이 무사히 건너자, 다시 흩어지니 추격병이 건너지 못하였다고 한다.
유사한 내용이 부여(夫餘)의 시조신화인 동명신화(東明神話)에도 전하는데, 『논형(論衡)』ㆍ『위략(魏略)』ㆍ『후한서(後漢書)』 등에서는 각각 ‘엄호수(奄淲水)’ㆍ‘시엄수(施掩水)’ㆍ‘엄사수(掩㴲水)로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고구려와 부여의 시조신화가 유사한 내용을 갖는 것은 부여족의 동명신화를 공통되게 시조신화로 확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엄체수는 특정한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신화 구성의 한 요소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