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1392년(태조 1)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康得龍)이 연주대라고 불렀다. 강득룡 · 서견(徐甄) · 남을진(南乙珍) 등이 이곳에서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주대는 1973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396년에는 연주암을 신축하였고, 1411년(태종 11)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충녕대군(忠寧大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뜻을 안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은 유랑 길에 올랐다가 이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원래의 암자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여 추억과 동경의 정을 끊을 수 없었으므로 현 위치로 절을 옮겼다고 한다.
그 뒤 두 왕자의 심경을 기리면서 세인들이 이곳을 연주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에는 높이 3.2m의 고려시대 양식을 한 삼층석탑이 있는데, 효령대군이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절은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龍華殿)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다.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886년에는 역시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전각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1918년에는 경산(慶山)이, 1929년에는 재운(在芸)이, 1936년에는 교훈(敎訓)이 중수하였다. 1975년 송원(松園)이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 연주대와 삼성각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 요사 개축, 1996년 관음전 개축, 2003년 영산전 중수,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을 비롯하여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후기의 우수한 작품으로, 1980년 시도유형문화재(현, 시도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