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은(泉玄隱)’이라 부르기도 한다. 본래의 성은 ‘연(淵)’이나, 당 고조의 이름인 이연(李淵)과 같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천(泉)으로 개칭하였다.
아들인 천비(泉毖)의 묘지명에는 그 이름을 ‘은(隱)’이라 하였다. 증조는 고구려 말기의 집권자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이며, 할아버지는 그의 장자인 연남생(淵男生)으로 태막리지(太莫離支)를 지낸 후 당에 투항하여 요동대도독우위대장군(遼東大都督 右衛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헌성(獻誠)은 남생이 두 동생에게 쫓겨났을 때 당나라에 들어가 원조를 요청하였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그 공로로 벼슬길에 올라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에 이르렀으나 692년에 모함을 받아 43세의 나이로 죽음을 당하였다.
현은(玄隱)은 헌성의 장자로 무기위유성현개국남(武騎尉柳城縣開國男)을 지냈다. 700년에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헌성의 억울함을 알고 우우림위대장군(右羽林衛大將軍)에 추증할 때, 현은 역시 유격장군(遊擊將軍)으로 좌옥검위우사계원외치동정원(左玉鈐衛右司階員外置同正員)으로 승진하였다.
733년에 아들 비(毖)가 사망할 무렵에는 광록대부위위경상주국변국공(光祿大夫衛尉卿上柱國卞國公)의 지위에 있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아들인 비(毖)의 묘지명을 지었는데, 그 묘지가 현재 북경대학(北京大學)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