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정(泉玄靜)’이라 부르기도 한다. 증조는 고구려 말기의 집권자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이며, 할아버지는 그의 장자인 연남생(淵男生)으로 태막리지(太莫離支)를 지낸 뒤 당나라에 투항하여 요동대도독우위대장군(遼東大都督 右衛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헌성(獻誠)은 남생이 두 동생에게 쫓겨났을 때 당나라에 들어가 원조를 요청하였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그 공로로 벼슬길에 올라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에 이르렀으나 692년에 모함을 받아 43세의 나이로 죽음을 당하였다. 「천헌성묘지(泉獻誠墓誌)」에 의하면 현정(玄靜)은 현성의 셋째 아들인데, 어떤 벼슬을 역임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 헌성이 700년에 우우림위 대장군(右羽林衛大將軍)에 추증될 때에도, 형인 현은(玄隱)은 무기위(武騎尉)에서 유격장군(遊擊將軍)으로 승진하였으나, 현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당시 관직에 오르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