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승산현(僧山縣, 또는 所勿達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 동산(童山)으로 고쳐 수성군(守城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그 뒤 고려 때 열산(烈山)으로 고쳐 간성군에 예속시켰다.
조선시대에는 간성과 고성을 잇는 해안도로가 발달해 있었으며 운근역(雲根驛)·명파역(明波驛) 등이 있었다. 해안 가까이 위치한 초도(草島)에는 산성이 있었고, 조선 초기까지 술산(戌山)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고려의 정종·원종 때 이곳에 해적이 출현하여 영파술의 주민과 수비대가 함께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는 수비군이 상주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유적으로는 열산현의 옛 성인 남산성(南山城)이 있었는데, 이 성은 돌로 쌓았으며 성의 둘레는 1,528척이고 성 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으나 지금은 황폐해졌다.
열산현 동쪽의 포진호(泡津湖, 지금의 花津浦)에는 옛날 큰물이 나서 열산 골짜기를 휩쓸어 전의 고을은 물에 잠기고 새 고을은 산기슭에 옮겨 설치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날씨가 개고 파도가 조용한 날에는 물속에 잠긴 옛 고을의 담장과 집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현내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