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

  • 역사
  • 지명
  • 삼국
고구려시대의 지명.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기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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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구려시대의 지명.

내용

광개토왕의 경략지 중의 하나이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 의하면 395년(永樂 5년)에 거란(契丹)족의 일부인 필혈부(匹絜部)에 비정되는 패려(稗麗)를 정벌하기 위하여 부산(富山)·부산(負山)을 지나 염수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패려의 부락(部落) 3개와 600∼700영(營)을 공파하고 수많은 소·말·양 등을 뇌획하고 귀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광개토대왕 즉위년인 392년에 북진(北進)하여 거란을 토벌하고 남녀 500구(口)를 포로로 잡았으며, 고구려에서 빼앗긴 백성 1만명을 다시 초유하여 돌아왔다는 기사가 있는데, 앞서 비문의 영락 5년 기사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염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소요수(小遼水) 즉 혼하(渾河)로 비정하는 설,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보는 설, 요하 상류 시라무렌하 유역의 염호(鹽湖)인 광제호(廣濟湖) 일대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요하 상류 일대로 보는 견해가 가장 합리적이다.

참고문헌

  • - 『광개토왕릉비』(박시형, 과학원출판사, 1966)

  • -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노태돈,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1, 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 -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의 정복기사(征服記事) 재검토(再檢討)」(서영수, 『역사학보(歷史學報)』119, 1988)

  • - 「고구려의 북방진출(北方進出)과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田中俊明, 『광개토호태왕비연구(廣開土好太王碑硏究) 100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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