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大兄) 벼슬을 지냈다. 665년(보장왕 24)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자 그의 장자 남생(男生)이 정권을 장악한 뒤 지방의 여러 성을 순시하였는데, 이 때 남생의 두 동생 남건(男建)과 남산(男産)이 정변을 일으켜 수도를 장악하였다.
이에 남생은 국내성(國內城)으로 달아나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오골성(烏骨城)을 공격하는 한편 대형 불덕(弗德)을 보내어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남생의 투항행위에 대한 휘하세력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이후 남생은 요동의 현도성으로 옮겨 다시 당나라와의 연결을 꾀하였으며, 이 때 염유가 당나라의 원군을 얻기 위해 당나라에 파견되었다. 이듬해에 남생의 아들 헌성(獻誠)이 다시 당나라로 들어가 당나라군을 끌어들였으며, 결국 내정의 허실이 탐지된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