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부터 고려 초 불교의 여러 종파를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 총칭하였다. 즉 법상종(法相宗)·법성종(法性宗)·열반종(涅槃宗)·계율종(戒律宗)·원융종(圓融宗) 등의 오교와, 가지산(迦智山)·실상산(實相山)·사굴산(闍崛山)·동리산(桐裏山)·사자산(師子山)·성주산(聖住山)·희양산(曦陽山)·봉림산(鳳林山)·수미산(須彌山) 등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이다.
고려 중기 13세기에 이르러 오교양종(五敎兩宗)이라는 용어가 보이고 있으며, 1213년(강종 2) 최충헌(崔忠獻)이 지겸(至謙)을 왕사로 추천하면서 양종오교라는 용어를 썼고, 1273년(원종 14) 현성사(賢聖寺)에서 오교양종의 승려들을 모아 법회를 개최하였던 등의 예가 있다.
오교양종에 대한 해석에는 많은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숙종 때에 의천(義天)이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하고, 무신집권기에 지눌(知訥)이 조계종을 성립시킨 이후에 오교양종이 등장한다고 보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계율종·법상종·법성종·원융종·천태종 등을 교종의 5종으로, 선적종 및 조계종을 선종의 양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천태종이 대두하자, 구산선문이 통합된 선적종이 조계종으로 바뀌면서 천태종과 함께 양종을 이루어 오교양종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두 견해 사이에는 선적종과 조계종의 동일 여부의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조계종은 구산파가 통합된 것이지만 지눌의 수선사(修禪社)로 기점을 삼아야 한다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열반종·계율종·법상종·법성종·원융종의 5교종과 선종의 천태 및 조계 양종을 일러 오교양종이라고 한 설이 대체로 통설화되어 왔다.
그리고 후일에 계율·법상·열반·법성·원융의 5교는 각각 남산종(南山宗)·자은종(慈恩宗)·시흥종(始興宗)·중도종(中道宗)·원융종으로 불리게 되고, 조선 초 억불정책에 의하여 오교양종은 선교양종으로 통합, 정리되었다.
종래의 이와 같은 설에 대하여 근본적인 비판도 최근 대두되고 있다. 오교를 교종의 5종파로 해석해 오던 종래의 통설을 비판, 오종이란 교학을 바탕으로 성립된 교종 종파 전체를 총칭하는 용어로 쓰였다는 것이다.
또한 구산은 고려 초에 확정된 용어가 아니라 고려 후기에 선종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선종이나 조계종이라는 용어는 고려 초부터 사용, 결국 조계종이란 남종선을 계승한 고려의 선종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고려 초에는 조계종·화엄종·유가종(瑜伽宗)의 3대종파가 있었고, 고려 중기에 천태종이 성립됨으로써 4대종파로 전환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