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성범(聖範), 호는 죽포(竹圃). 강원도 화천 출신. 1917년만주 봉천성 장백현(奉天省長白縣)으로 이주할 때까지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1918년현립제이정몽학교(縣立第二正蒙學校)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9년 7월에 무송현(撫松縣)으로 이전하여 독립운동단체인 흥업단(興業團)에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1914년에 대종교인이 되어 시교원(施敎員)으로 활동하였고, 1918년에 참교(參敎), 1924년에는 지교(知敎)로 임명되어 길림성 영안현(吉林省寧安縣)으로 옮겨 포교활동에 전념하였다.
그 뒤 1935년에 상교(尙敎), 1942년에는 정교(正敎)가 되어 대형(大兄)의 호를 받기까지 18년 동안 주로 총본사(總本司)의 전범(典範)·전강(典講)·전리(典理) 등 요직을 맡아 헌신하였다.
한편, 홍범규제수정위원(弘範規制修正委員)과 경의원 조직위원(經議院組織委員)의 직무를 맡았으며, 교적(敎籍) 간행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42년 10월 천전건축주비회(天殿建築籌備會)가 결성되자 총무위원이 되어 활약하던 중, 그 해 11월 19일 영안현의 와룡둔고가자(臥龍屯孤家子)에서 일본경찰에게 붙잡혔다.
그 뒤 영안현 경무과에서 4개월, 목단강 경무처에서 9개월 동안 악독한 고문과 기한(飢寒)에 시달린 데다가 식음을 전폐한 끝에 1944년 1월 4일 병보석중에 죽었다. 그 뒤 임오교변의 순교자인 임오십현(壬午十賢)으로서 사교(司敎)로 추승(追陞)되었으며, 동시에 도형(道兄)의 호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