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여확(汝擴), 호는 동암(東巖)·백암(白巖). 직장 오극권(吳克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오백령(吳百齡)이다. 어머니는 제주고씨(濟州高氏)로, 고경룡(高景龍)의 딸이다. 처는 청송군(靑松君) 심액(沈詻)의 딸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 음보(蔭補)로 직장이 되었다. 이듬해 알성문과에 병과한 뒤 전적(典籍)이 되고, 형조와 공조의 좌랑이 되고 곧 뒤이어 병조정랑이 되었다.
1625년에 교리(校理)를 거쳐 1627년에 정언이 되었으며, 이듬해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그뒤 1635년과 그 이듬해에 수찬(修撰)·장령(掌令) 등 청환(淸宦)을 역임하였다. 1634년에 둘째 딸을 인평대군(麟坪大君)에게 출가시켰다.
이듬해 인렬왕후(仁烈王后)가 죽자, 빈전도감도청(殯殿都監都廳)이 되어 상례(喪禮)를 잘 치렀다. 1637년 전주부윤을 거쳐 충청감사와 황해도감사를 역임하였다. 왕자의 장인으로서 죽은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성품이 겸손하여 진취를 좋아하지 않았고, 광해군의 폐모 정의(廷議: 조정의 논의)에는 불참하였다. 내외요직을 지내면서 양차의 호란 때 근왕병동원과 군수조달에 진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