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단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빈전도감도청, 전주부윤, 황해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여확(汝擴)
동암(東巖), 백암(白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2년(선조 25)
사망 연도
1640년(인조 18)
본관
동복(同福,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주요 관직
병조정랑|정언|지평(持平)|빈전도감도청(殯殿都監都廳)|전주부윤|황해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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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빈전도감도청, 전주부윤, 황해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여확(汝擴), 호는 동암(東巖)·백암(白巖). 직장 오극권(吳克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오백령(吳百齡)이다. 어머니는 제주고씨(濟州高氏)로, 고경룡(高景龍)의 딸이다. 처는 청송군(靑松君) 심액(沈詻)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 음보(蔭補)로 직장이 되었다. 이듬해 알성문과에 병과한 뒤 전적(典籍)이 되고, 형조와 공조의 좌랑이 되고 곧 뒤이어 병조정랑이 되었다.

1625년에 교리(校理)를 거쳐 1627년에 정언이 되었으며, 이듬해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그뒤 1635년과 그 이듬해에 수찬(修撰)·장령(掌令) 등 청환(淸宦)을 역임하였다. 1634년에 둘째 딸을 인평대군(麟坪大君)에게 출가시켰다.

이듬해 인렬왕후(仁烈王后)가 죽자, 빈전도감도청(殯殿都監都廳)이 되어 상례(喪禮)를 잘 치렀다. 1637년 전주부윤을 거쳐 충청감사와 황해도감사를 역임하였다. 왕자의 장인으로서 죽은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성품이 겸손하여 진취를 좋아하지 않았고, 광해군의 폐모 정의(廷議: 조정의 논의)에는 불참하였다. 내외요직을 지내면서 양차의 호란 때 근왕병동원과 군수조달에 진력하였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동주집(東州集)』
『동명집(東溟集)』
『순암집(順菴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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