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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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다섯 관서.
제도/관청
  • 설치 시기조선 전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범직 (건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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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다섯 관서.

내용

한성부의 중(中) · 동(東) · 남(南) · 서(西) · 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사항과 교량 · 도로 · 반화(頒火 : 매년 병조에서 써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 · 금화(禁火) · 가대타량(家垈打量 :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도읍지의 행정구획을 동 · 서 · 남 · 북 · 중의 방위로 구분하여 행정력을 표시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문헌상 왕조의 수도를 방위로 구분, 구획한 것은 고려 태조가 개경에 동 · 남 · 서 · 북 · 중 오부를 둔 것으로, 조선왕조가 성립된 뒤 한성 천도 후에도 그대로 계승하여 한성오부가 성립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고려 문종 때 사(使) 1인, 부사(副使) 1인, 녹사(錄事) 2인과 갑과권무(甲科權務)를 두었으며, 고종 때 판관 2인, 녹사 2인을 두어 도망하는 병사를 수검(搜檢)하게 하였다. 충렬왕 때 부사를 부령(副令)으로 고치고 뒤에 개성부에 합쳤다가 충혜왕 때 다시 오부령(五部令)을 두었다.

조선에서는 영(令) 1인, 녹사 2인이 각 부마다 있었으며, 뒤에 개정되어 주부 1인, 참봉 2인이 있었는데, 뒤에 참봉 1인을 없앴다. 1742년(영조 18) 주부를 도사(都事)로 고치고, 봉사(奉事)를 새로 설치하고 참봉을 혁파하였다.

1792년(정조 16) 오부가 각각 영 1인을 두고 봉사를 도사로 고쳤다. 이속으로는 서원(書員)이 각각 4인, 사령(使令)이 각각 8인, 대청직(大廳直)이 각각 1인, 군사(軍士) 각각 2인이 있었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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