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한성판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이조참판에 이어 한성 판윤·호조 판서가 되었다. 이때 경비부족을 메우기 위해 각도, 각읍의 채은처(採銀處: 은을 캐는 지역)를 호조에서 관장하여 수세하도록 하였고, 왜에 면포예급문제, 각 아문의 둔전경영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듬해에는 이조판서 겸 수어사, 이어 다시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갑술옥사로 하옥, 유배되었다. 1697년 풀려나와 우부빈객을 지냈다.
1701년 무고(巫蠱)의 옥사에 연루되어 대정현(大靜縣: 지금의 제주도)에 안치되었다. 1712년 함평·강진 등지로 이배되었다가 이듬해에 영해부(寧海府: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이배되어, 1716년 그곳에서 죽었다. 특히 글씨에 능하였고, 뒤에 신원되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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