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 출생. 본관은 해주(海州).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를 중퇴하였다.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朝鮮文學)』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1936년 서정주(徐廷柱)·김동리(金東里)·여상현(呂尙玄)·함형수(咸亨洙) 등과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월북하기까지 10년 남짓 동안에 『성벽(城壁)』(1937)·『헌사(獻辭)』(1939)·『병(病)든 서울』(1946)·『나 사는 곳』(1947) 등 네 권의 시집과 번역시집 『에세닌 시집(詩集)』(動向社, 1946)을 남겼다. 월북한 뒤의 시작 활동은 거의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다만 시집 『붉은 깃발』이 있다는 사실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오장환의 시적 편력은 대체로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록 습작품이기는 하나 초기 작품 「목욕간」·「캐메라 룸」·「전쟁」에서 보여주듯이,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 나머지 전통과 낡은 인습을 부정하는 세계이며, 둘째는 시집 『성벽』·『헌사』의 시편과 같이 낡은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 해항지대(海港地帶)를 방랑하고 관능과 퇴폐를 바탕으로 하는 탈향지향(脫鄕志向)의 세계이다.
셋째는 시집 『헌사』의 시편 일부와 『나 사는 곳』의 시편이 보여주는 탈향지향에서 귀환하는 귀향의지의 세계이며, 넷째는 시집 『나 사는 곳』의 시편 일부와 『병든 서울』의 시편들이 보여주듯이 오장환이 광복 후에 좌경 단체에 가담하여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를 노래한 프롤레타리아 지향의 세계이다.
오장환의 시적 변모는 과거의 전통과 풍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반명제로 탈향지향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벽』·『헌사』에서 보여준 도시적인 이미지와 보헤미안적 기질은 『나 사는 곳』에 와서 전원적인 이미지와 향토애로 바뀐다.
하지만, 광복 후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는 현실에 참여하여 당시 상황을 웅변적으로 토로하게 한다. 이밖에 평론으로 「백석론(白石論)」(1937)·「자아(自我)의 형벌(刑罰)」(19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