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흥숙(興叔). 오수간(吳守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덕립(吳德立)이고, 아버지는 오현(吳晛)이다. 어머니는 고홍진(高弘進)의 딸이다. 제주 정의현에 거주하였다.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0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의현에서는 일찍이 과거에 입격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고을사람들은 오정빈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성균관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저작(著作)·박사 등을 두루 거쳤다. 그 사이에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를 지냈는데, 규모가 있고 민첩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전적(典籍)·승의랑(承義郎)에 오르고 예조좌랑에 옮겨졌으며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였다. 1710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재야에서 학문을 닦다가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