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빈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승의랑, 예조좌랑, 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흥숙(興叔)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63년(현종 4)
사망 연도
1710년(숙종 36)
본관
해주(海州)
주요 관직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전적(典籍)|승의랑(承義?)|예조좌랑|춘추관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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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의랑, 예조좌랑, 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흥숙(興叔). 오수간(吳守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덕립(吳德立)이고, 아버지는 오현(吳晛)이다. 어머니는 고홍진(高弘進)의 딸이다. 제주 정의현에 거주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0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의현에서는 일찍이 과거에 입격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고을사람들은 오정빈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성균관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저작(著作)·박사 등을 두루 거쳤다. 그 사이에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를 지냈는데, 규모가 있고 민첩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전적(典籍)·승의랑(承義郎)에 오르고 예조좌랑에 옮겨졌으며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였다. 1710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재야에서 학문을 닦다가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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