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우 ()

정치
인물
북한에서,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한 혁명 제1세대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수립과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힘쓴 군인 ·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95년 2월
출생지
함경북도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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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에서,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한 혁명 제1세대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수립과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힘쓴 군인 · 관료.
개설

함경북도 무산 출생. 북한 정권의 혁명 제1세대이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김일성(金日成)의 항일유격대에 참가, 주로 동만(東滿)지역에서 활동하였고, 1945년 소련군의 북한지역 진격과 함께 김일성 부대의 성원으로 귀국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오진우는 북한군 창설자의 한 사람으로, 회령(會寧)의 제3군관학교장, 사단장, 군단장, 집단군사령관, 인민군총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을 거쳐 1976년에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에 사망할 때까지 19년간 인민무력부장직에 있으면서 북한군을 지휘, 통제하였다.

1958년에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당의 직책으로는 1956년 3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것을 시초로, 당중앙위원·당정치위원회 후보위원, 당중앙위원회 비서, 정치위원과 비서를 거쳐 1980년 10월에 개최된 6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위원과 상무위원으로 승진하였다.

권력 서열로는 김일성·김정일(金正日) 다음인 3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같이한 혁명 제1세대로 1950년∼1960년대는 반대파를 제거하고 김일성의 유일 지도체제를 확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70년에는 혁명 제1세대와 군부를 대표하여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앞장섰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후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제1부위원장으로 김정일 중심의 비상체제를 주도해 왔다. 특히 중소분쟁이 격화되던 1960년대 국방에서 자위노선과 그에 따르는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 등 4대군사노선의 실천과정에서 민족보위성 부상으로서의 공로를 평가받아 최고의 영예인 영웅칭호를 받았다.

또한, 1960년대에 정립된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배합전술의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시에는 국가장의위원회의 한 사람으로 영결식과 추도대회, 100일추도대회 등을 김정일과 같이 주도하였고, 그 뒤에 병 치료차 프랑스를 방문하여 치료를 받았다. 귀국 후 1995년 1월 인민군 제9차 선동원대회 참가를 끝으로 2월에 암 질환으로 사망하였다. 240명으로 국가장위위원회가 구성되고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거행되었다. 묘지는 혁명열사릉에 있다.

참고문헌

『북조선인명사전』(세계정경조사회편, 1997)
집필자
김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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