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고원 출생. 1908년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22년 1월에 윤덕병(尹德炳)·김한(金翰)·신백우(申伯雨)·원우관(元友觀)·이혁로(李爀魯)·백광흠(白光欽) 등과 함께 19인의 명의로 무산자동지회를 발족함으로써 우리 나라 무산자해방운동단체의 효시를 이루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영(李英)·신일용(辛日鎔) 등의 신인동맹회와 합쳐 무산자동맹회를 발족하고 천도교당에서 강연회를 주최하는 등 활약하였다. 1931년 4월에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부터는 천도교 청년당의 간부를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6년 2월에는 북조선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을 역임하고, 1947년 2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 부위원장, 1948년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및 부의장,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1957년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 같은 해 9월 무임소상(無任所相) 등을 역임하다가 1958년 12월 간첩죄로 숙청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