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현

  • 정치·법제
  • 인물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지회를 설립하는 등 사회주의운동을 벌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58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4년(고종 21)
  • 출생지함경남도 고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남식 (평화문제연구소, 정치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지회를 설립하는 등 사회주의운동을 벌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내용

함경남도 고원 출생. 1908년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22년 1월에 윤덕병(尹德炳)·김한(金翰)·신백우(申伯雨)·원우관(元友觀)·이혁로(李爀魯)·백광흠(白光欽) 등과 함께 19인의 명의로 무산자동지회를 발족함으로써 우리 나라 무산자해방운동단체의 효시를 이루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영(李英)·신일용(辛日鎔) 등의 신인동맹회와 합쳐 무산자동맹회를 발족하고 천도교당에서 강연회를 주최하는 등 활약하였다. 1931년 4월에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부터는 천도교 청년당의 간부를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6년 2월에는 북조선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을 역임하고, 1947년 2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 부위원장, 1948년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및 부의장,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1957년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 같은 해 9월 무임소상(無任所相) 등을 역임하다가 1958년 12월 간첩죄로 숙청당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공산주의운동사』2(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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