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오위도총부도총관, 조지서제조, 귀후서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9년 희빈장씨(禧嬪張氏) 소생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숙종과 남인에 대하여 노론의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운동을 일으키자, 이에 찬동하여 책봉을 반대하는 의견을 상계했다가 일시 관작이 삭탈되었으며, 얼마 뒤 왕명에 의하여 직첩이 환급되기도 하였다.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예서에 능하였다. 1712년에는 청나라 사신이 국왕과 대신의 시가 담긴 병풍을 원하자, 그것을 서사(書寫: 써서 베낌)하기도 하였다. 왕실의 옥책(玉冊: 왕이나 왕후의 호를 올릴 때 덕을 칭송하는 글을 옥에 새겨 놓은 작은 책)과 신판(神板: 神位를 새긴 판)·유지(幽誌: 남기는 글) 등을 많이 썼다.
또한 시문에도 능하여 숙종의 많은 총애를 받았다. 전하는 묵적으로는 행서체로 쓴 간찰이 다소 있으며, 금석문으로는 「오두인석비(吳斗寅石碑)」 등이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양곡집(陽谷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한국서화인명사서』(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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