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년(진성여왕 1) 왕비 김씨가 그의 선고(先考) 및 죽은 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불국사에 곡식을 보시한다는 내용이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수록되어 있는 이 글은 원래 동국승사비(東國僧史碑)로부터 인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글이 과연 최치원에 의하여 쓰여진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엇갈린 견해도 있지만, 진찬설(眞撰說)이 유력하며,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 및 『국역고운선생문집』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발원문은 신라의 왕비가 선고 이찬(夷粲)과 죽은 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벼 3,000점(苫)을 불국사의 광학침릉(光學寢陵)에 보시하여 학림(學林)을 돕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광학침릉은 불국사표훈유가원측삼성강원(佛國寺表訓瑜伽圓測三聖講院)을 지칭한 것이다.
특히, 이 글 중의 ‘표훈·유가·원측 삼성’ 운운의 구절은 불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9세기 후반 불국사에서 표훈·유가·원측 등이 세 성인으로 숭배되고 있었음으로 미루어 이들과 이 절과의 깊은 관계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