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신종의 7대손이며 공양왕의 아우이고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왕균(王鈞)의 아들이다.
처음에 정양군(定陽君)에 봉해졌으나 1389년(공양왕 1)에 정양부원군(定陽府院君)으로 다시 봉하여지고 판문하(判門下)가 되었으며, 영삼사 종부시사(領三司宗簿寺事)에 이르렀다.
공양왕이 즉위하여 우왕·창왕을 낮추어 서인(庶人)으로 삼고, 이림(李琳)·이귀생(李貴生)·유염(柳琰)·최렴(崔濂)·노귀산(盧貴山)·이근(李懃) 등을 유배시킬 때 왕명으로 장단에서 진을 치고 비상사태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공양왕이 사친(四親)을 추존하고 그 제사를 맡겼으며, 1391년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마전군(麻田君)·귀의군(歸義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경희(景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