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의 제20대 왕, 신종의 6대손으로, 신돈이 숙청되었을 때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종실.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89년(창왕 1) 가노가 영흥군 왕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왔지만, 그 모습이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조(父祖)의 이름이나 자기가 살던 고장조차 알지 못하였으므로 의심을 받았다.
이 때 부인 신씨의 종제(從弟)인 전 판사(前判事) 신극공(辛克恭), 전 판개성부사(前判開城府事) 박천상(朴天祥), 전 밀직부사(前密直副使) 박가흥(朴可興),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숭인, 하륜(河崙) 등 그의 인친(姻親)들은 영흥군 왕환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부인 신씨는 자기 남편이 틀림없다고 하여 결국 헌부(憲府)에 송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흥군 왕환의 두 아들과 여러 종실들이 그가 영흥군임을 입증함으로써, 박천상·신극공·박가흥·하륜 등은 무고(誣告)의 혐의를 받고 유배되었다. 한편, 우왕 때 밀직부사를 지낸 최운해(崔雲海)의 처 권씨(權氏)가 영흥군에게 재가(再嫁)하였는데, 이 때문에 문하부(門下府)가 헌사(憲司)에 통첩하여 권씨를 국문한 일도 있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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