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회전 ()

고전산문
작품
1840년(헌종 6)에, 김제성(金濟性)이 지은 한문소설.
이칭
이칭
남호몽록(南湖夢錄)
작품/문학
창작 연도
1840
작가
김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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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왕회전」은 1840년(헌종 6)에 김제성(金濟性)이 지은 한문소설이다. 17세기 중반 경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화사몽유록」을 개작하여 주인공을 제갈량으로 바꾸고 원 세조가 침입하는 전쟁담을 확대·부연하고 있다. 따라서 「금화사몽유록」과 같이 입몽(入夢)과 각몽(覺夢)이 나타나는 몽유록의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정의
1840년(헌종 6)에, 김제성(金濟性)이 지은 한문소설.
저자

작품 말미에 '세 숭정기원후사경자삼월하한 남호거사기(歲 崇禎紀元後四庚子三月下澣 南湖居士記)'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840년(헌종 6)에 남호거사(南湖居士) 김제성(金濟性, 1803-1882)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제성은 1874년(고종 11)에 증광시 생원에 합격한 사족으로 알려져 있다.

구성 및 형식

한문 필사본. 상하 2권 1책 13회. 유일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표지에 한문으로 ‘왕희전(王會傳)’이 적혀 있고, 그 다음 장에 ‘왕회전 상(上) 목록(目錄)’이라고 하여 제7회까지의 회장체 제목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왕회전 상’ ‘남호몽록(南湖夢錄)’이라고 적혀 있다. 하권도 같은 체제이다. 작품 말미에는 '병오 삼월 초이일 책주 이주정댁 필서(丙午 三月 初二日 冊主 李主政宅 畢書)'라는 필사기가 있다.

내용

「왕회전」은 당시에 유행하였던 「금화사몽유록(金華寺夢遊錄)」의 내용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다. 전체 분량의 1/4 정도까지는 「금화사몽유록」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금화사몽유록」의 결말 부분인 원 세조의 침입 부분부터 새로운 내용이 전개된다. 그 내용만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원 세조는 자신을 부르지 않자 군사를 일으켜 침범하였다가 제갈량에게 사로잡힌다. 송 고종이 자신의 원수라며 악비를 시켜 죽이니, 한 고조가 원 세조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아 사람들에게 보이고 경계문을 써서 사방에 반포하게 한다. 송주(宋主) 유유(劉裕)는 스스로 창업지군(創業之君)으로 생각하고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초청하지 않자, 여러 제후와 힘을 합쳐 쳐들어온다. 이를 막으러 간 항왕은 유목지에게 꼬임을 당하여 배반하였다가 제갈량의 계략에 빠져 예주에서 대패한다. 다시 서주에서 싸움을 일으키다가 제갈량의 계교로 사로잡히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다.

한편, 100만 정병을 거느리고 송주를 치러 갔다가 장홍책의 꼬임을 당하여 다른 마음을 품었던 한신은 제갈량의 계략에 의하여 사로잡혔다가 풀려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서달이 도원수가 되어 마침내 송주를 사로잡고 진왕에 봉해진다. 한 고조가 제왕들의 힘으로 청나라를 물리치자고 하자, 명 태조는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조선이 청에게 항복한 것을 ‘배은망덕’이라고 하자, 효종과 송시열의 북벌론 등을 들며 때가 맞지 않고 힘이 없어서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한 고조가 악사에게 명하여 파연지곡(罷宴之曲)을 연주하게 하며 다시 술잔을 들어 오랜 세월 동안의 근심을 씻어 버리자고 한다. 이때 연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며 이별하는데, 문득 음풍이 불고 비가 내리더니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다.

의의 및 평가

「왕회전」은 발문에 ‘숭정(崇禎) 기묘년간(己卯年間)에 한 서생이 금화사에 투숙하였다가 한 꿈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금화사몽유록」의 창작 시기가 ‘숭정 기묘년’, 즉 1639년(인조 17)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최덕리(崔德履)의 「금산사대몽록(金山寺大夢錄)」, 문한명(文漢命, 1893-1894)의 「금산사기(金山寺記)」와 더불어 「금화사몽유록」을 원작으로 삼은 19세기 개작본이다. 개작할 때에 배경을 산동에서 낙양의 한 궁궐로 바꾸고 입몽과 각몽을 없앴다.

또 제갈량을 작품의 중심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방관자형 몽유자에서 주인공형 몽유자로 바꾸었다. 특히 군담(軍談)을 확대하였다. 「왕회전」에는 중국 역대 인물들에 대해 8자로 품평하는 8자 평어가 있다. 무려 323명에 달하는 인물의 생애와 특징을 8자의 한자로 요약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박학다식함을 보여준다. 김제성은 8자 평어를 짓는 데 있어 형 김제학의 작품인 「낙포도정(洛圃都政)」과 「귀암의정(龜菴擬政)」을 참고하여 인물을 추가하고, 한시 평어와 조선 후기 관리 평가의 전통을 반영하였다.

더불어 이 작품은 '원나라 세조 ⇒ 송나라 유유 ⇒ 초나라 항우'순의 세 차례 반란을 서사화하는데, 역사적 시간을 거스르는 역전적 시간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중화인식이 인종적 · 지역적인 측면에서 문화적인 측면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방편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청나라에 대한 인식이다. 작가는 숭명의식(崇明意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개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명 태조의 입을 빌려 밝힌다. 따라서 청나라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숭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시의 대세론, 현실론을 반영한 것이다. 작가는 존화양이(尊華攘夷)및 화이관(華夷觀)의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전개하며, 원 세조, 유유, 항우 등의 여진족과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를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 또 한 고조와 명 태조의 두 번에 걸친 문답을 통해 무력으로 청을 정벌하는 북벌론(北伐論)은 불가하다는 것을 밝히고, 그 대신에 존주론(尊周論), 대명의리(對明義理), 춘추대의(春秋大義)에 기반한 내면적 숭명의식을 강조한다.

참고문헌

원전

한국학디지털아카이브: 王會傳(http://yoksa.aks.ac.kr/main.jsp)

단행본

신해진 역주, 『왕회전(상)』(역락, 2017)

논문

김수현, 「<王會傳>의 시간구성과 중화의식」(『동방학』 33,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5)
신상필, 「신자료 한문소설 <금산사대몽록(金山寺大夢錄)>의 성격과 의미(『열상고전연구』 43, 열상고전연구회, 2015)
임치균, 「『王會傳』 연구」(『장서각』 2,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임치균, 「〈王會傳〉의 八字 評語 연구」(『장서각』 30,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차충환, 「明·淸 교체와 조선후기 소설」(『인문학연구』 25,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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