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요령 남산근 유적은 중국 요령성 영성현 남산근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그릇 · 비파형동검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이다. 노합하의 지류인 곤도하 상류의 남쪽산 아래에 있는 다섯 갈래의 구릉 위에 있다. 500여 점에 이르는 청동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각종 청동그릇과 손칼·도끼·끌·화살촉·꺾창·투겁창·칼집·방패·투구 등의 공구와 무기들이었다. 특히 고식(古式)의 비파형 동검은 송국리에서 출토한 비파형동검의 조형(祖型)으로 한반도의 청동기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이밖에 돌무지무덤과 돌널무덤은 요령지방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의
중국 요령성 영성현(寧城縣) 남산근촌(南山根村)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그릇·비파형동검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개설
내용
101호분에서는 모두 500여 점에 이르는 청동유물을 출토하였다. 중원(中原)지역에서 사용한 예기(禮器)와 유사한 각종 청동그릇 11점과 함께 손칼(도자) · 도끼 · 끌 · 돌살촉 · 꺾창 · 투겁창(동모) · 칼집 · 방패 · 투구 등의 공구와 무기들이 있었다. 차마구로는 재갈 · 말방울 · 장식 · 고리 · 단추 등이 있었고, 그밖에 거울 및 각종 장신구 등이 있었다. 이와 함께 중원지역의 예기와는 양식이 전혀 다른 일상용 토기의 형태와 유사한 청동그릇도 다수 출토하였다.
102호분은 101호분보다 소형이고, 앙신직지장(仰身直肢葬)이며, 머리가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부장유물로는 청동손칼 · 끌 · 송곳 · 화살촉 · 말재갈 · 마구 · 거울 및 각종 장신구와 함께 돌도끼 · 뼈화살촉 · 구슬 등을 출토하였다.
남산근 유적의 주요한 출토품인 고식(古式)의 비파형 동검은 이곳을 하가점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의 표준유적으로 만들어 놓은 중요한 유물이다. 이 유적의 연대는 유사한 모양의 다른 유적의 연대로 미루어보아 서주 만기(西周晩期)∼춘추 초기(春秋初期), 즉 서기전 9세기 중반∼8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부여 송국리 고분 등에서 출토한 비파형동검의 조형(祖型)이 남산근에서 발견되었다. 또 남산근의 돌덧널무덤과 유사한 형식이 대전 괴정동 유적, 아산 남성리 유적, 부여 연화리 유적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나아가서 요령지방의 돌무지무덤[積石塚]과 돌널무덤[石棺墓]도 한반도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다. 남산근 유적을 통해 요령지방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이 당시에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중국 동북지방의 유적발굴 보고』(조중공동고고학발굴대, 사회과학원, 1986)
- 「비파형동검과 남산근 각문골판의 문제」(김정배, 『한국사학보』17, 2004)
- 「요서비파형동검문화의 재인식」(박경철, 『선사와 고대』12, 1999)
- 「內蒙古寧城縣南山根102號石槨墓)」(中國科學院考古硏究所東北工作隊, 『考古』1981·4, 1981)
- 「寧城南山根遺址發掘報告」(中國科學院考古硏究所內蒙古工作隊, 『考古學報』1975年 第2期)
- 「寧城縣南山根的石槨墓」(遼寧省昭烏達盟文物工作站 中國科學院考古硏究所東北工作隊, 『考古學報』1973年 第2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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