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金山寺) 총섭(摠攝)이며 순교승(殉敎僧)이다. 가계는 미상이며, 20세에 출가하였고, 34세에 구암사(龜巖寺)에서 완허(琓虛)의 법인(法印)을 받아 백파(白坡)의 4세법손이 되었다.
불경을 많이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를 수십만 번 외웠으며, 수행도 매우 깊었다. 그러나 금산사가 있는 금구지방이 금혈지중심(金穴之中心)이라 해서 예로부터 금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고, 그가 금산사총섭으로 있을 때에 금산사 부근으로 사금(砂金)을 캐기 위한 사람들이 매우 빈번히 내왕하였다.
이들은 광맥을 따라 굴을 파다가 나중에는 사리탑(舍利塔)이 서 있는 언덕 밑에까지 와서 금을 캐게 되었다. 그는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한 금산사를 지킬 것을 승려들과 결의하고 타협과 위협 등으로 금을 캐는 사람들과 절충하였으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주감영에 이 문제를 호소하여 채광을 금지하도록 하였으나 채광꾼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는 삼보(三寶)를 수호하기 위해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하면서 완강히 버티었으며,
1902년 정월 초하루에 채광꾼들에게 무수히 맞고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는 이차돈(異次頓)의 순교 이래 정법(正法)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몇 안 되는 사례 중의 하나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