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명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금산사 총섭을 역임한 승려.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02년(고종 3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6년(헌종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금산사 총섭을 역임한 승려.

내용

금산사(金山寺) 총섭(摠攝)이며 순교승(殉敎僧)이다. 가계는 미상이며, 20세에 출가하였고, 34세에 구암사(龜巖寺)에서 완허(琓虛)의 법인(法印)을 받아 백파(白坡)의 4세법손이 되었다.

불경을 많이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를 수십만 번 외웠으며, 수행도 매우 깊었다. 그러나 금산사가 있는 금구지방이 금혈지중심(金穴之中心)이라 해서 예로부터 금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고, 그가 금산사총섭으로 있을 때에 금산사 부근으로 사금(砂金)을 캐기 위한 사람들이 매우 빈번히 내왕하였다.

이들은 광맥을 따라 굴을 파다가 나중에는 사리탑(舍利塔)이 서 있는 언덕 밑에까지 와서 금을 캐게 되었다. 그는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한 금산사를 지킬 것을 승려들과 결의하고 타협과 위협 등으로 금을 캐는 사람들과 절충하였으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주감영에 이 문제를 호소하여 채광을 금지하도록 하였으나 채광꾼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는 삼보(三寶)를 수호하기 위해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하면서 완강히 버티었으며,

1902년 정월 초하루에 채광꾼들에게 무수히 맞고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는 이차돈(異次頓)의 순교 이래 정법(正法)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몇 안 되는 사례 중의 하나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 - 『동사열전(東師列傳)』

  • - 『선맥(禪脈)』(서경보, 아카데미,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