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국

  • 역사
  • 지명
  • 초기국가
신라건국기 주변에 있던 소국.
이칭
  • 이칭다파나국(多婆那國), 완하국(琓夏國), 정명국(正明國), 화하국(花廈國)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두진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신라건국기 주변에 있던 소국.

내용

석씨(昔氏)의 시조이며 왕인 탈해(脫解)가 태어난 나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일명 정명국(正明國)ㆍ완하국(琓夏國)ㆍ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성국의 함달파왕(含達婆王)이 적녀국(積女國)의 왕녀를 왕비로 맞았는데, 왕비가 오랫동안 아이가 없다가 기도하여 큰 알을 낳으니, 그것을 궤 중에 넣어 칠보와 노비와 함께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 알에서 깬 탈해는 먼저 김해 지역에 상륙했다가 거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신라로 들어갔다.

용성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왜국의 동북쪽 일천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그곳이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에 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용성국은 동해 중에 있었다고 주장되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 『삼국지(三國志)』동옥저전의 순녀국(純女國)을 적녀국으로 해석한다.

둘째, 다파나국은 서역(西域)의 소국이며 함달파는 불교의 음악신이므로 용성국은 서역에 있었다고 한다. 탈해와 연관이 있는 수장(水葬) 풍속이 동남아시아와 쓰촨성[四川省], 그리고 서역지역에 퍼져 있음은 이 학설을 뒷받침한다.

셋째, 해류의 흐름으로 보아 용성국은 중국 남부 해안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탈해신화 속에는 북방적인 야장설화(冶匠說話)와 남방적인 난생설화(卵生說話)가 모두 들어 있는데, 그 두 요소가 함께 들어올 수 있는 경유지가 중국 중남부 해안지역이 된다.

다만, 오늘날 왜의 소재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용성국이 동해안에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되면 용성국은 서역으로부터 중국 중남부 해안지역을 경유하여 해도로 신라에 도달하기까지의 어느 지역에 위치한 소국으로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신라왕릉(新羅王陵)의 재검토(再檢討) 2-탈해왕릉(脫解王陵)-」(강인구, 『윤무병박사회갑기념논총(尹武炳博士回甲紀念論叢)』, 198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