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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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고려의 제34대 공양왕의 둘째 사위로,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중흥공신과 왕 사이의 대립을 불러왔으며, 왕이 폐위되자 처형된 종실.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왕과 중흥공신간의 대립
  • 본관단양(丹陽)
  • 사망 연도1392년(공양왕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호군|세자시학|단양군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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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의 제34대 공양왕의 둘째 사위로,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중흥공신과 왕 사이의 대립을 불러왔으며, 왕이 폐위되자 처형된 종실.

개설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찬성사 우현보(禹玄寶)의 손자이고,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우홍수(禹洪壽)의 아들이다. 부인은 공양왕의 둘째딸 정신궁주(貞信宮主)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89년 11월 이성계(李成桂) · 정몽주(鄭夢周) 등 중흥공신(中興功臣)에 의하여 공양왕이 즉위하였는데, 이 날 왕의 셋째사위인 강회계(姜淮季)의 아버지 강시(姜蓍)와 함께 근시(近侍)하던 중 중흥공신을 믿지 말라는 강시의 진언내용을 어머니 윤씨(尹氏)에게 말하였다.

이를 다시 윤씨의 사촌오빠인 윤소종(尹紹宗)이 이성계 등 중흥공신에게 전함으로써 왕과 중흥공신간의 최초의 마찰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되었다.

1390년(공양왕 2) 1월 대호군으로 세자시학(世子侍學)에 제수되고, 곧 이어 단양군(丹陽君)에 봉하여져 왕의 신임을 받고 가문을 일으키는 데 공헌하였다. 1392년 왕이 폐위되자 다른 부마들과 함께 개경의 회보문(會寶門) 밖에서 참수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단양우씨보(丹陽禹氏譜)』

주석

  • 주1

    : 셋째 사위 : 『고려사』 권45, 세가, 1390년(공양왕 2) 윤4월. "왕의 딸들을 궁주로 책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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