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씨. 본관은 언양(彦陽). 시중(侍中) 죽헌(竹軒) 김윤산(金倫山)의 아들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화엄종의 승려가 되었으며, 현수교관(賢首敎觀)을 깊이 익혔다.
그뒤 중국 북경에 들어갔다가 강소(江蘇)·절강(浙江) 등지를 여행하면서 많은 고승들을 찾아 구도하였는데, 만나는 이들마다 그를 큰 그릇으로 여겼으며 헤어질 때는 증표를 주었다.
귀국 후에는 조계종의 잠공(岑公)과 함께 당대의 고승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이름있는 여러 사찰의 주지를 맡았다. 늙어서는 경주의 단암(檀庵)에 은거하여 5년 동안을 편안히 지냈으나, 다시 왕명에 의하여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의 주지를 맡았다가, 개성의 법왕사(法王寺)로 옮겨 머물렀다.
그곳에서 화엄종사(華嚴宗師)로서 크게 종풍을 떨치다가 주지직을 사양하고 은거하였으므로 이색(李穡) 등이 시가를 보내 그의 뛰어난 행을 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