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본 규슈[九州]의 오이타현[大分縣] 우사시[宇佐市] 우사신궁[宇佐神宮]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종.
내용
용두(龍頭)는 그 입을 천판(天板) 위에 붙이고 있으며, 뒤에 붙은 형식적으로 약화된 음통(音筒)에는 사격자문(斜格子文)의 띠로 구획한 뒤 그 내부에 앙·복련(仰覆蓮)의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종신의 상·하대에는 당좌(撞座)를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반원권의 문양을 연속으로 배치하고, 이 원권 내부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과 당초문을, 그리고 원권 사이의 여백면에는 팔메트(palmette: 방사상)형의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상대 아래 4곳에 배치된 방형의 연곽대에는 상·하대와 동일한 형태의 문양으로 시문하였고, 연곽 내부에는 연꽃봉오리 형태의 연뢰가 9개씩 높게 돌출되었다.
당좌는 종신 앞뒷면 두 곳에 배치되었는데 통일신라 중기의 종에 비해 훨씬 아래쪽인 하대쪽으로 치우쳐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당좌는 5개의 연과(蓮顆)를 배치한 원형의 자방과 그 주위를 복엽(複葉)의 7엽연판문으로 장식하고, 다시 외구를 소문(素文)으로 처리한 뒤 그 전체를 연주문대의 원권으로 둘렀다.
당좌 사이의 종신 앞뒷면에는 동일한 형태의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1구씩 부조되어 있는데, 구름 위에 앉아 머리 위로는 천의(天衣)를 흩날리며 양손을 들어 배 앞에 놓인 장고를 치는 모습이다. 이 주악상은 8∼9세기 범종과 비교할 때 자세가 경직되고 생동감을 잃고 있으며, 종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연곽 아래로부터 거의 하대까지 이르고 있다.
한편 이 종에는 당좌와 주악천인상 사이에 해당되는 종신의 한쪽 여백면을 택해 별도의 장방형 명문구(銘文區)를 만들고 좌서(左書)의 양각명으로 '천복4년 갑자2월 일송산촌 대사주성 내절본화상능여(흥)본촌주 연필일합입금5천80방(근)합소성(天復四年甲子二月 日松山村 大寺鑄成 內節本和上能與(興)本村主 連筆一合入金五千八十方(斤)盒掃成)'이라고 기록하였다. '천복 4년'은 904년에 해당되며 송산촌(松山村)에 있었던 대사, 즉 큰절에 사용된 종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朝鮮鐘』(坪井良平, 角川書店, 1974 )
- 「일본에 있는 한국범종(韓國梵鐘)」(최응천, 『강좌미술사』 4, 한국미술사연구소, 1992)
-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1(최응천, 『박물관신문』 234, 국립중앙박물관, 1991.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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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대각선이 대칭을 이루며 연속되어 만들어진 무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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