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희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시 가운데 정조의 명을 받들어 쓴 「봉교제진태학은배시(奉敎製進太學恩杯詩)」·「규장은대옥서선찬연구(奎章銀臺玉署宣饌聯句)」 등 40여 편에 달하는 봉교제진시와, 조정에 있을 때의 생활을 회상하며 읊은 「억구유삼십운(憶舊遊三十韻)」은 다른 문집에서 보기 드문 예로서 왕을 그리는 구절이 가득하다. 특히 「억구유삼십운」에는 구절마다 주석이 있어 당시의 조정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소 중 정조의 명으로 삼남지방의 폐정에 대해 올린 「응지진시무십조잉사장령귀양소(應旨陳時務十條仍辭掌令歸養疏)」, 환곡 등의 개선책을 말한 「청조치황정소(請措置荒政疏)」, 언로를 열 것(開言路)·검소함을 숭상할 것(崇儉德)·무예 강습(講武事) 등의 10조항을 들어 진언한 「사병조참판소(辭兵曹參判疏)」 등은 정조 당시의 개혁 정책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의에는 농업 개량을 주장한 「농정의(農政議)」, 균역법의 폐단을 시정하라고 촉구한 「균역십목의(均役十目議)」 등이 있다. 서(書) 가운데 「여정동백원용별지읍막육조(與鄭東伯元容別紙邑瘼六條)」는 영월부사로 있을 때 강원도관찰사 정원용에게 올린 글이다. 그곳의 민폐를 상세히 들고 있다. 전에는 제주도 기생 출신으로 기민을 구호한 김만덕에 대해 교명을 받들어 쓴 「만덕전(萬德傳)」이 있다.
설은 역시 교명을 받들어 쓴 「성기신설(誠幾神說)」 등 성정(性情)·이기(理氣)에 관한 것이 여러 편 있다. 교는 「의균역교(擬均役敎)」로 균역의 당시 시행 모습을 알려준다. 「중용강의조대」와 「주자대전고식」은 정조에게 강의한 내용이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