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울산군지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토기편을 비롯한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이곳은 울산에서 경주에 이르는 통로에 해당되는 곳이다. 주변의 중산리나 창평리에는 청동기시대∼삼국시대 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북쪽에는 해발 444m의 동대산(東大山)이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의 서남쪽 능선이 해발 100m선에서 갑자기 완만해져 낮은 구릉을 형성하며, 그 앞으로는 동천-성안천이 흐르고 있다.
이 유적은 1995년 6월에 경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당시 이 일대의 5만여 평에 걸쳐 택지조성공사가 진행되어 유적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다. 제한된 범위에서 실시된 이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가 발굴되었다.
주거지는 평면 장방형(長方形)의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로, 크기는 9m×4.8m이다. 벽체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안쪽에 폭 30∼40㎝, 깊이 10㎝의 배수용 구(溝)가 정연하게 돌려져 있었다.
주거지의 서북쪽 모서리에서는 직경 1m 가량의 원형(圓形) 아궁이시설이 확인되었다. 그 내부와 주위에서는 조리용 토기편들이 그을린 채로 출토되었다. 바닥은 대체로 생토면(生土面)을 그대로 이용했으나 부분적으로는 불로 지져 다지기도 하였다. 기둥구멍을 비롯한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유물은 내만구연(內彎口緣)에 횡선문(橫線文)이 시문된 옹형토기(甕形土器)를 비롯해 반월형석도·석창·숫돌·공이·모루[內拍子] 등이 있다.
연대는 출토유물의 수가 적어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울산 검단리 유적을 비롯한 주변의 유적을 참고할 때, 무문토기시대 전기 말쯤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