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맹인지도자 손용수(孫龍洙)가 설립하였다. 손용수는 당시 우리나라 맹인계의 3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평양의 고익화, 서울의 이종화, 함경도의 손용수로 손꼽히고 있었다.
손용수는 1926년에 총독부 산하의 제생원(濟生院)의 맹부(盲部)를 제10회로 졸업한 뒤 원산에서 안마원을 경영하던 중 자택에서 원산지역의 맹학생들을 모아 3년제의 보통학교 과정으로 맹교육을 시작하였다.
그가 맹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함흥에서 6년제의 맹학교를 운영하고 있던 일본인과의 경쟁적 관계도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경영하여 오던 안마원 수입으로 1941년에 건평 100평의 2층 교사를 신축하고 맹교육의 확장에 힘썼다.
당시 원산맹학교의 교육과정은 제생원 맹부의 교육과정에 준하면서, 특히 침(鍼)·구(灸)·안마를 위주로 교육내용을 운영하여왔다. 초기의 교사로는 학교장인 손용수와 그의 딸 손경심이 주로 맡았고, 원산시내에서 안마사로 활약하던 제생원 졸업생 맹인들이 시간제 강사로 직업전문교과를 담당하였다.
손경심은 정안자로서 주로 음악과 기초교과목을 담당하였다. 광복이 되자 원산맹학교는 일본인들이 사용하여온 유치원으로 이전하였고, 손용수는 일제 말 일본인에게 전쟁출자금을 헌납하였다는 이유로 1946년 봄에 구속됨으로써 그가 쌓아온 사회적 업적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달리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이 학교는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제생원에서 맹교육을 받고 서울에서 안마원을 하던 한태수가 인수, 교육을 맡아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