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원정사(元正寺)’로, 『범우고』와 『가람고』에는 ‘圓井寺(원정사)’라고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31본산시기에는 패엽사(貝葉寺)의 말사였다.
고려 충숙왕 때 원나라 순제(順帝)의 원찰로 창건하였다. 우리나라에 귀양와 있던 순제는 구월산 꼭대기에서 긴 깃발을 날려 절터를 잡았는데, 이곳에는 용정(龍井)이라고 불리는 깊은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귀국 후 그는 중국에서 모든 자재와 우수한 공장(工匠)들을 보내 우물을 메우고 기교를 다하여 절을 짓도록 한 뒤 절 이름을 원정사라 하였다고 한다. 창건 후의 어느 날, 업청강(業淸江)에 불상 3체(體)와 향목(香木)으로 만든 탁자가 배에 실려 들어왔는데, 소식을 들은 정광사(淨光寺)의 승려가 맞이하려 하였지만 불상을 옮길 수 없어서 그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원정사 승려의 꿈에 그 불상이 나타나서 봉안할 것을 지시하였으므로 가볍게 불상을 가져와서 모셨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명전(普光明殿)과 승방(僧房)이 있는데, 현재 보광명전 내에 있는 본존불과 향목 탁자는 당시 현몽에 의해서 맞아온 것이라고 한다. 경내에는 1713년(숙종 39)에 이정년(李鼎年)이 지은 「원정사사적비」가 있다. 절 주위에는 삼유담(三遊潭)이라는 큰 못과 형제폭포·마당소 등의 명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