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이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소탕하는 통일전쟁중에 백제의 옛 땅을 지키던 당나라 군대를 신라군이 격파한 사실을 해명하는 임무를 띠고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신라는 무력으로 당나라 군대를 싸워서 격퇴, 소탕하면서, 한편 외교상으로는 당나라에 주변의 신하로서 예의를 다하는 양면정책을 시행하였다. 672년(문무왕 12)에 신라는 만부득이 백제의 잔당과 당군을 격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을 간곡히 개진하고 사죄하는 표문(表文)을 가지고 외교사절을 당나라에 파견하였다.
정사에 급찬(級飡) 원천, 부사에 내마(奈麻) 변산(邊山)이 포로로 잡은 병선낭장(兵船郎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내주사마(萊州司馬) 왕예(王藝), 본열주장사(本烈州長史) 왕익(王益), 웅천도독(熊川都督) 사마칭군(司馬稱軍), 증산사마(曾山司馬) 법총(法聰) 및 군사 170명을 데리고 은 3만 3500푼, 구리 3만 3000푼, 바늘 400개, 우황(牛黃) 120푼, 금 20푼, 40승포(升布) 6필, 30승포 60필을 공물로 가지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