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폐사된 대흥사(大興寺)의 부속암자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1353년(공민왕 2)에 나옹(懶翁)이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93년(숙종 19)에 의명(義明)이 중창하였다. 1787년(정조 11) 이후에는 불교의 탄압으로 인하여 거의 폐허화되었다.
이에 1824년(순조 24) 대연(大淵)이 중창의 뜻을 세워 춘담(春潭)의 재력과 달선(達善)의 도움을 받아 퇴락한 당우들을 복원하였다. 그 뒤 다시 퇴락한 것을 1949년에 중창하였고, 196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암은 관세음보살의 육근원통(六根圓通)을 상징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옛날 이 암자 뒤의 절벽 석문(石門)에서는 술이 흘러나왔는데, 욕심 많은 고을 태수가 하늘에서 내리는 술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뚫자 술이 물로 변하여 버렸으므로 주민들이 원통한 일이라 하여 이 일대를 원통골 이라하고 암자를 원통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법당 내에는 석가여래좌상과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절의 입구를 금포정(錦浦汀) 부도골(浮屠谷)이라 하는데, 이 골짜기 어딘가에 암벽을 파고 사리(舍利)를 모셔둔 사리굴이 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신보도사(新甫道師)라는 백발노인이 도를 닦아 불법의 이치를 깨쳤다고 전하는 굴이 있는데, 암벽에는 ‘新甫讀書此洞中(신보독서차동중)’이라는 일곱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암벽과 마주보이는 곳에 배석대(拜石臺)가 있는데, 승려들이 이 배석대에 모여서 서로 도를 닦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암벽을 향하여 합장하면서 절하였다고 한다.『조선사찰사료』에 1826년에 동파(東坡)가 지은 「원통암중수기」가 전하고 있어 연혁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
1997년 화마로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불에 탔으나, 2015년 10월 대웅전 복원 불사를 마치고 낙성식 및 관음보살 점안식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