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년(나물마립간 27)에 역사상 최초로 신라가 중국에 교제하였다. 즉, 위두를 사신으로 전진의 왕 부견(符堅)에게 특산물과 아름다운 머리를 가진 신라의 미녀를 보냈다.
이 때 부견은 위두에게 “그대의 말에 해동(海東)의 형편이 옛날과 같지 않다고 하니 무엇을 말함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대답하기를 “이는 마치 중국의 시대변혁과 이름이 바뀐 것과 같은 것이니, 지금이 어찌 옛날과 같을 수 있으리요.” 하고 설명하였다.
이 기록은 매우 귀중한 것으로서 그 때까지 마한·진한·변한 등의 수십 나라가 있었는데, 이제 진한에서 ‘신라’라는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여 지배적인 지위를 확립하고 통일적 세력을 형성한 시기를 말하여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귀중한 사료는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인용된 『진서(秦書)』의 기사이다. 이 기사에서 신라의 왕 이름이 누한(樓寒)이라 쓰여, 나물(奈勿) 또는 나밀(那密)이라 한 나물마립간이 누한이라고 호칭된 것은 매우 주목된다.
그리고 위두가 사신으로 간 연도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81년인데,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건원(建元) 18년, 즉 태원(太元) 7년(382, 壬午)으로 기록되어 있어 1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382년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