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유금사 법당 뒷마당에 위치해 있다. 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이다. 기단부와 탑신부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었고 근래에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여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탑이 위치한 유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의 말사로 637년(선덕여왕6)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여러 차례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가 1627년(인조 5)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탑은 원래 대웅전 앞에 있던 것을 법당 뒤로 옮겼는데, 이건 당시 탑내에서 불상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탑은 여러 매의 판석으로 저석을 놓고 그 위에 상·하층 이중기단으로 구성되었다. 하층기단의 면석은 동면과 서면이 각각 1매로 되었고 남북이 2매로 되었는데, 중앙에 1주의 탱주가 새겨졌다. 그 위로 4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갑석을 올렸다. 갑석은 단부 쪽으로 기울기를 두었고 모서리에 합각선이 뚜렷하다. 갑석 상면에는 호각형의 괴임을 두어 탑신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각 면 1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결구하였고, 그 위로 남북으로 이음이 있는 2매의 갑석을 올렸다. 갑석은 일반적 신라 석탑에 비하여 두께가 얇고 아래 부연을 얕게 새긴 것이 특징이다. 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괴임을 두었는데 이 역시 얕게 돌출시켰다. 갑석의 모서리에는 하층기단 갑석과 마찬가지로 합각선을 새겼고 단부 쪽으로 약한 기울기를 지닌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총 6매로 구성되었다. 탑신석은 모두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으며 면석에는 문비 등의 장식은 없다. 각 층의 옥개석은 4단의 받침을 두었고 옥개받침 상단부와 처마의 간격이 넓고 수평에 가까우며 안쪽으로 물끊기 홈을 두었다. 낙수면은 3층 모두 경사도가 급하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 합각선과 만나 비교적 강한 반전을 보인다. 전각면 모서리에는 1개씩의 풍경공이 있고 탑신 윗면에는 각 층 모두 2단의 탑신받침을 얕게 각출했다.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었으나 근래 노반과 복발, 앙화, 보륜의 순으로 새로 복원되었다. 탑 앞에는 장방형의 배례석이 남아 있는데 측면에 각 면 2구씩의 안상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기단부 면석을 모두 판석으로 결구하고 상하층 탱주 숫자가 1:1이다. 또한 옥개받침의 숫자가 4단으로 줄어드는 등 9세기 중후반 신라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상대 갑석이 급격히 얇고 하단의 부연이나 상단의 탑신괴임이 얕게 새겨지는 등의 변형이 보인다.
이 탑은 전체적인 크기나 탑신의 체감율에서 간략화·소형화를 추구하는 신라하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이고 있다. 또한 상대 갑석에 나타나는 변화는 중앙의 석탑 양식의 지방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석탑 앞에 남아 있는 배례석은 신라하대 밀교의식과 석탑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