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숙정(叔整), 호는 도암(道巖). 세거지는 안동(安東) 하회(河回)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 유성룡(柳成龍)이며,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통훈대부 행용궁현감(通訓大夫行龍宮縣監) 이경(李坰)의 딸이다.
유단의 아버지 유성룡이 상주(象州) 목사로 재직할 때 그를 이 곳에서 낳았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왜란이 일어나 아버지가 선조를 모시고 의주(義州)로 피란하자 백부인 유운룡(柳雲龍)을 따라 봉화(奉化)로 피난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곽재우(郭再祐)의 휘하에 들어가 곽재우를 도왔는데 이 때 나이 겨우 18세였다.
그 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다. 1612년(광해군 4) 김백함(金百諴)의 무고로 유단의 아우 유진(柳袗)이 서울로 압송되자 유진과 함께 올라가던 중 각기병이 발생하여 부득이 중도에서 혼자 머물게 되었다.
그 후에 입경, 분통함을 참지 못하여 병이 더욱 위중하자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 내국(內局) 의원을 보내 치료하여 주었으나, 끝내 낙선방(樂善坊)에 살던 자형(姊兄)인 이문영(李文英) 집에서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덕형(李德馨)이 유단의 명정(銘旌)을 쓰고 장정(壯丁)을 모아 고향으로 운구하여 주었다. 조봉대부사헌부장령(朝奉大夫司憲府掌令)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도암문집(道巖文集)』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