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제용감직장, 오위장, 이산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수보(秀甫)
노곡(老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9년(선조 12)
사망 연도
1654년(효종 5)
본관
문화(文化: 지금의 황해도 신천)
주요 관직
의금부도사|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오위장(五衛將)|이산현감(尼山縣監)
관련 사건
유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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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제용감직장, 오위장, 이산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수보(秀甫), 호는 노곡(老谷). 아버지는 예빈직장(禮賓直長) 유선민(柳先民)이며, 어머니는 언양김씨(彦陽金氏)로, 김응상(金應祥)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21년(광해군 13)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33년(인조 11) 의금부도사를 거쳐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사옹원직장(司饔院直長)·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오위장(五衛將)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상주(喪主)의 몸으로 호남에서 의병을 모아 여산(礪山)에 이르렀으나,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 귀가하였다. 1646년 유탁(柳濯)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산현감(尼山縣監)으로서 이 사실을 미리 조정에 고발한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그러나 이 해 11월에 고변이 조작되었다고 하여 체포되어, 부안으로 정배되고 다시 경성으로 이배되었다. 그 뒤 관직이 회복되어 1649년 천안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1654년 김제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노병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노곡공유적』 1책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사마방목(司馬榜目)』
『노곡공유적(老谷公遺蹟)』
『속자저(續自著)』(유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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