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수보(秀甫), 호는 노곡(老谷). 아버지는 예빈직장(禮賓直長) 유선민(柳先民)이며, 어머니는 언양김씨(彦陽金氏)로, 김응상(金應祥)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21년(광해군 13)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33년(인조 11) 의금부도사를 거쳐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사옹원직장(司饔院直長)·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오위장(五衛將)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상주(喪主)의 몸으로 호남에서 의병을 모아 여산(礪山)에 이르렀으나,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 귀가하였다. 1646년 유탁(柳濯)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산현감(尼山縣監)으로서 이 사실을 미리 조정에 고발한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그러나 이 해 11월에 고변이 조작되었다고 하여 체포되어, 부안으로 정배되고 다시 경성으로 이배되었다. 그 뒤 관직이 회복되어 1649년 천안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1654년 김제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노병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노곡공유적』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