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포도대장, 경상좌병사,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장흥부사·남양부사를 거쳐 1626년(인조 4) 광주목사(廣州牧使)로 남한산성을 쌓는 등 공이 컸다. 1630년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재임 중에는 수군을 이끌고 평안도 가도(椵島)에서 일어난 유흥치(劉興治) 등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였다. 영변부사를 거쳐, 1634년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국방을 강화하고 청나라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 뒤 오위도총부의 부총관·포도대장·경상좌병사 등의 내외 요직을 거쳐, 1636년 다시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성지 보수, 총포 제조, 군량미 비축, 군사 훈련 등에 힘썼다. 이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순찰사 홍명구(洪命耉)와 함께 적병을 추격하면서 항전하였다.
이듬해 1월에 청군을 김화에서 무찌르고 춘천에 이르렀으나,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졌다. 다시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해 공수 대책에 전념하였다. 1641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칠 때 병사를 요청해오자 왕명을 받아 금주(錦州)로 출정하였다. 하지만 명나라와의 지난날의 의리를 생각해 참전을 회피하고, 소극적으로 싸워 청나라의 문책을 받았다.
그 뒤 지중추부사·통제사 등을 지냈으며, 좌의정에 증직되고 김화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청선고(淸選考)』
- 『진주류씨문헌록(晉州柳氏文獻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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