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선천군수, 승문원판교,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이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유영경과 근친으로 전랑(銓郎) 물망에 올랐으나 군수로 있기를 원한다는 소(疏)를 올렸다. 이로 인해 유영경이 물러나고 대북파가 득세하였을 때, 홀로 화를 입지 않았다.
그 뒤 양주목사로 승진되고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선천군수를 거쳐, 1614년(광해군 6)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강계부사가 되었다. 이 때 관직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비단옷[緋衣]을 입었다 한다.
이듬해 호조참의·우승지가 되고, 장단부사에 제수되었다. 1619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권신이자 대북파인 한찬남(韓纘男)의 동생에 대한 포계(褒啓)를 각하하고 소를 올려, 한찬남을 탄핵하였다.
오랜 외임(外任)으로 병이 많은 끝에 한찬남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로 우울하게 보내다가 전주 감영에서 죽었다. 인조반정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백헌집(白軒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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