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경(子敬). 유세린(柳世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의(柳儀)이다. 아버지는 참판 유영길(柳永吉)이며, 어머니는 권우(權祐)의 딸이다.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이다.
1599년(선조 32) 진사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승정원의 주서를 역임한 뒤 1601년에는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을 거쳐 헌납(獻納)을 지냈다. 1604년 공조좌랑·정랑에 이어 전적(典籍)을 역임하고 1605년 문학, 1606년 헌납, 1607년 지평(持平)·직강(直講)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숙부인 유영경(柳永慶)이 이끄는 소북으로서 당인(黨人)들과 함께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세자로 옹립하려 하였으나,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여 대북파인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일파가 집권하게 되면서 탄핵을 받고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 1616년 죽임을 당한 뒤에 부관참시당하였으나,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