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군자시주부, 장례원사평, 목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에 이시현은 유식을 대단하게 여기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상으로 내리면서 칭찬하였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급제했으며, 1640년(인조 18)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사부(師傅)를 지냈다. 이 때 유식은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방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논한 장문의 대책(對策)을 지어 올렸다.
일찍이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론(廢位論)이 일어났을 때, 삼각산(三角山)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흉도(凶徒)들이 유식을 유혹하려 들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귀향하였다. 후에 군자시주부(軍資寺主簿)·장례원사평(掌禮院司平)·목천현감(木川縣監) 등을 역임했으며, 인조반정(仁祖反政) 당시 조헌(趙憲)의 추전(追典)을 건의하는 소(疏)를 올려 윤허(允許)를 받았다.
송시열(宋時烈)·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가 깊었으며, 특히 역서(曆書)와 지리설(地理說)에 조예가 깊었고, 장중한 비평작품(批評作品)을 많이 저술하였다. 한편 덕양서당(德陽書堂)을 건립했으며, 저서로는 『덕곡문집(德谷文集)』 4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덕곡문집(德谷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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