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한성부서윤, 보성군수, 창원대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7년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成均館)의 학유(學諭)·학정(學正)·전적(典籍)과 양현고(養賢庫)의 봉사(奉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1등소무원종공신(一等昭武原從功臣)에 책록(冊錄)되었다. 1631년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었다.
그 후 보령현감(保寧縣監)을 거쳐 형조좌랑(刑曹佐郞)과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임하던 중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임금을 배종(陪從)했는데, 이 때 유신로는 화의(和議)를 극력 반대하였다.
그 후로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보성군수(寶城郡守)·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등을 역임했으며,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저서로는 『춘포유고(春圃遺稿)』 1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춘포유고(春圃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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