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종룡(從龍), 호는 항재(恒齋) 또는 성재(醒齋). 증조는 유효반(柳孝班)이고, 할아버지는 유양손(柳良孫)이다. 아버지는 사지(司紙) 유공좌(柳公佐)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고 150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1514년(중종 9)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1518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정사를 돌보지 않고 기생들과 술만 마신다고 하여 탄핵을 받아 동지중추부사로 전직되었다. 이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남곤(南袞)에 의하여 대사헌이 되었다.
그러나 남곤 일당에게 협력하지 않고 도리어 대간들을 거느리고 청하기를 “전하께서 다시 광조를 쓰시어 임금과 신하가 옛날과 같으면 신등이 마땅히 직에 나아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청컨대 신들을 죽여서 간인(奸人)들의 마음을 쾌하게 하소서.”라고 하여, 조광조를 구원하고자 하다가 파직당하였다. 그 뒤 향리에 묻혀 술로 울분을 달래다 죽었다.
시풍이 호탕하여 한때 명성이 높았다. 편저로는 『진수해범(進修楷範)』 2권 2책이 있는데, 이 책은 1519년(중종 14) 옛 경전과 사첩(史牒) 및 구류제가(九流諸家)의 설을 섭렵하고 진덕수업(進德修業)에 필요한 문구를 뽑아 간행한 것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