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의, 의주부윤,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같은 해 영남어사로 파견되어 지방관들의 치적을 점검하였다. 1776년 왕세손이 주도한 응제(應製)에 1등으로 뽑혀 문명을 날렸다. 이어 장헌세자에게 시호를 올릴 때 공로가 인정되어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라 1777년(정조 1) 강릉부사로 부임하였다.
이 때 영서 지방의 화삼전(火蔘田) 수세·속전세(續田稅)·강릉부 공삼(貢蔘) 감세·강릉부 봄보리 작전(作錢) 등의 민폐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또, 진전(陳田)의 면세 문제, 표류해온 왜인의 문제 등도 강릉 지방의 큰 폐단으로 지적하였다. 이듬해 대사간·승지를 지내고, 1779년 성천부사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냈다.
1781년 예조참의로서 예조이정당상(禮曹釐正堂上)이 되어 예조정랑 이가환(李家煥)과 함께 『춘관지(春官志)』와 1750년 이후의 『영희전지(永禧殿誌)』를 편찬하였다. 1783년 예조참판으로 감동관(監董官)이 되어 덕릉(德陵)·정릉(定陵)을 개축했고, 동지사 겸 사은부사(冬至使兼謝恩副使)를 역임하고 이어 승지가 되어 『동국문헌비고』의 수정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이승훈(李承薰)이 연경에서 금서(禁書)인 천주교 관련 서적을 몰래 들어온 것을 금지하지 못한 죄로 후일 규탄을 받았다. 178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참판으로『춘방지(春坊志)』를 저술하였다.
1787년 부총관이 되어 『국조오례의』를 보충해 편찬했고, 이듬해 『춘관통고(春官通考)』를 저술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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